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리바야시 겐진 (문단 편집) == 상세 == 중학생 시절부터 [[AV]]에 미쳐있었다고 하며 일본의 1류 명문 고등학교인 [[쓰쿠바대학]] 부속 코마바(駒場) 고등학교[* [[일본]] 최고의 명문고등학교 중 하나. 2020년 기준 한 학년 현역 44%가 [[도쿄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비해서는 몰락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교.]를 졸업했음에도 학업보다는 AV 배우의 꿈을 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회원증으로 AV를 빌려보고 고교시절부터는 렌탈 비디오가게의 점원으로 일했다.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AV업계와 연이 닿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고1때 문화제에서 알게된 중3 여자애와 키스까지만 하고 끝났는데, 그 여자애의 친구로 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모리바야시군은 야하냐고 묻길래 나는 대학생하고도 같이 있었다고 자랑했더니 그 여자애가 자기는 F컵이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상대가 연하라서 동정이라는 것도 밝히지 못하고 경험자인척했고 둘이 술먹고 노래방에서 키스 기습 한뒤 팬티에 손을 넣어 만지는 방법도 모른채 엉망으로 찔렀다고 한다. 위치를 이쯤 있겠지라고 상정 정도만 했다. 이때 애태우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잠시후 호텔까지 가서 막상 하려고 하니 여자애가 콘돔 얘기를 하길래 아 맞다 이런 반응 뒤 초조해 발기가 안되어 콘돔을 겨우 꼈으나 여전히 초조해 발기가 안되었기에 넣지 못하고 허리를 흔드는 척만 했기에 본인도 이때 전혀 기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잠시후 사정한 척하고 빈 콘돔을 티슈에 몰래 버리고 지금까지 한 것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하니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자기가 잘 얼버무린 줄 알았는데 다신 그 여자애에게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자기 만족으로 동정 상실한 것으로 하고 이제 동정 상실했으니 풍속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2때 앞서 문화제에서 만난 여학생과 제대로 된 경험을 했고 고3때 까지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에게 만족감은 주지 못했다고 한다.[[http://hanabusa-kannon.com/joko/1120/3|#]] AV에 반쯤 미쳐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망쳐 1년 재수후 사립 [[센슈대학]]을[* [[편차치]] 50~55정도 되는 중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대학. 한국식 백분위로는 상위 30% 수준.][* [[니혼대학]] 등과 함께 묶여서 [[닛토코마센]] 소리를 듣는다. 보통 [[에키벤]] 대학들과 함께 대학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대학.] 들어갔다. 그러나 원래 지망하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자 들어간 사교댄스 동아리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해 다니던 도중, 잡지 뒷면에 V&R플래닝에서 아마추어 AV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AV에는 [[야쿠자]]가 얽혀있다는 이야기에 무섭긴 하였으나 '모자이크 너머를 꼭 보고 싶다'는 일념하에 전화를 걸고 면접을 보러갔다.[* 물론 처음에는 겐진이 AV 배우를 할 생각은 없었다. AV 를 정말 좋아해 현장과 여배우를 보고 싶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 알몸을 보이긴 저항이 있었다고, 이 이상 넘어가면 돌아 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면 영상으로 남기 때문에. 하지만 수험 실패후 목표를 잃고 AV 배우가 되려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면접을 보러 간 곳이 야쿠자가 가득한 곳이 아니라 30대의 평범한 아저씨가 가득한 곳으로, [[성도착]]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스캇물]]에서 막혀버렸다. 면접 당시에 '그건 좀...' 이라고 했지만 이후 '흥미는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오줌까진 참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앞서 면접을 왔던 남자가 [[게이|엉덩이에 야구빠따를 쑤셔박고]] [[개|여왕님이 던져주는 공으로 바닥을 천 번 노크하는 게]] [[광기|제일의 기쁨이고 우리 업계에서는 포상으로]] [[덕업일치|그 이상을 플레이하려면 AV 업계 밖에 없다고 하면서 투신했다기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2일 후에 업체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채용되었고 부탁 받은 내용은 단돈 1만 엔 개런티의[* 한달에 20-25일 정도 일하면 회사에서 임금을 더 줬다고 한다. 당시 대학생에게는 충분한 대금이었다고 한다.] 즙배우로 였다.[* 부카게물 등에서 직접 삽입은 하지 않고 배경에서 사정만 담당하는 역할.] 즙배우로 가기로 한 이후에는 즙배우 했으니까 이제 인생 끝났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서 요청에 응했다고 한다. 전화에 응한 이후로는 [[부카케]]를 하기 위한 연습[* 부카케 정도로 연습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였다. 마츠모토 카즈히코가 선구자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정도.]을 하기 위해 잡지를 구해다 놓고 정말로 열심히 연습했다. 집합 장소는 인적 드문 전차역으로 이런 데도 역이 있구나 싶은 곳이었는데 인력시장에서 사람 데려가듯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승합차가 와서 몇 명 하고 데려가는 구조였고, 도착한 장소는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의 자택으로 은퇴를 해서 집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었기에 AV 촬영 렌탈 장소로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곳이었다. 첫 촬영에 들어갔을 때 드디어 찍는다는 생각에 엄청 흥분해서 금방 발사해버릴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고 촬영을 잘 마무리했다. 첫 촬영 때 여배우에게 발사한다는 쾌감과 함께 감독에게 칭찬을 받는 성취감을 느껴 쾌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AV업계에 투신했다. 현재의 예명인 모리바야시 겐진도 이 때 붙여진 것으로 당시 작품이 [[사망유희]]의 패러디 작품이었는데 사망유희의 경우 악역도 이름이 다 붙어 있기 때문에 스탭롤에서 즙배우에게도 배역명이 존재했다. 자신에게 붙여진 겐진이란 예명은 감독이였던 인젠코가가 왠지 까무잡잡하고 [[원시인]][* '베이징 원인'이나 '자바 원인' 등에 붙여지는 그 원인이다.]처럼 생겨서 지은 것으로 본인이 첫 데뷔작이 마음에 들었기에 그 이후로 계속 같은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살이 좀 쩠을 때는 한국에선 [[양동근]]이나 [[싸이]] 성님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이한 뽀글머리가 트레이드마크로 미남형은 아니지만 여배우들이 상당히 선호하는 배우로 알려저 있는데 단순히 섹스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상담도 해주고 도움도 주면서 업계의 큰오빠 같은 포지션에 있다. 다만 22살 때까지 대학에 가는 척을 하고 집에서 출근을 하며 AV 배우일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으로 부터 출석일 수가 부족하다고 연락이 와서 부모에게 AV에 출연한 게 발각되었다.[* 겐진은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했는데 회사도 괜찮은 곳이고 사회적으로도 만족한다고 하며 부모님에게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다시 태어나도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을 정도. 하지만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을 납득 시키진 못했다고 한다. 무려 부모님은 나름 생각해보고 25살까지만 하라고 하며 5년을 기다려줬다고 한다. 25살에 그만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만두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과 사이가 매우 좋았던 듯하다.]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자 '내가 지금까지 널 AV 배우로 만들기 위해 키워온 게 아니다'라며 절연을 선언하여 아직까지 인정은 못받고 있다. 2008년경 결혼 얘기도 나왔지만 AV 출연 때문에 없던 일로 되었고 현재까지 [[독신]]이다. 정말로 좋아했던 여자이기 때문에 본인과 결혼하려면 '배우에서 은퇴하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은퇴할 생각을 가졌지만 부모님이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나가서 10년 동안이나 한 일이라면 자존심을 지켜라'라고 한 것에 깨달음을 얻어 은퇴하지 않고 결국 헤어졌다고 하니 직업에 대한 인정은 몰라도 부모님과의 절연은 어찌저찌 봉합된 듯? 경력이 쌓인 후에는 성 활동이나 담론에 관한 책도 쓰고 칼럼도 발표하는 식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이후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